노동조합/각종 노동조합

우리 모두의 바램으로 두 동지가 내려 왔습니다.

터사랑1 2009. 1. 25. 12:36

 

 

 

 

 

 

 

 

 

23일 오후 합의

어제 오전에 사무실에 있는데 울산 현대미포조선이 해결될 것 같다는 말일 돌았습니다. 울산에 있는 지인에서 연락을 했고, 그 지인은 아직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고, 마무리는 될 것 같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용인기업 동지들의 정규직으로의 복직등은 마무리가 되었는데, 굴뚝 농성자들에 대한 ‘손배’가 마지막 쟁점으로 남아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오후1시 40분경 지인으로부터 마무리 됐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총 11가지를 합의했고, 3개항(김순진 ‘현장의 소리’ 의장의 징계문제, 현장대책위 사람들의 징계문제 등)은 비공개 하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용산사건의 반향인가?

22일부터 회사의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는 내용을 통화를 통해 들었습니다. 통화를 하고,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속에서 ‘용산사건’의 반향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 권력집단의 야만성이 그대로 드러난 용산사건이, 100m 높이의 굴뚝에 있는 두 사람의 노동자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그리고 17일 영남권 노동자대회 이후 진보신당 농성장을 경비들이 침탈한 것에 대한 여론악화도 회사를 움직이게 한 원인중 하나가 아닐까?


우리에게 이런 동지들이 많이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고, 어쨌던 마무리가 잘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두 동지는 자신의 문제로 농성을 하지 않았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안으며 ‘현장의 소리’ 김순진 의장은 투쟁했고, 회사로부터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동료가 자신의 징계에 항의하며 ‘투신’한 것을 확인해야 했습니다.

이영도 동지는 김순진의장이 혹시나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살아서 싸운다’는 약속을 하면 무엇이던 함께 해 주겠다”고 함께 움직였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지역의 대표가 한 사업장의 문제를, 그것도 ‘공조직(?)’도 아닌 현장활동가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투쟁한 것입니다.

(요즘 금속노조나 민주노총은 ‘공조직’의 문제가 아니면 쉽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 두 동지의 투쟁이 한달여만에 마무리 됐습니다.

우리 주변에 이런 동지들이 얼마나 많을까를 반문하며, 합의서와 농성장에서 내려오는 사진등을 함께 싣습니다.

사진은 울산노동뉴스(http://www.nodongnews.or.kr)에서 퍼 왔으며, 합의서 원문은 미포만의 횃불(http://cafe.daum.net/mp-yi)이라는 다음의 까페에서 퍼 왔습니다.

 

투쟁이 승리하기까지 전국의 많은 동지들의 성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영남의 노동자들이 두 번의 노동자대회를 갖고, 17일에는 음식을 올려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두 동지의 투쟁에 함께 하기위해 굴뚝 밑에서 단식농성을 하며 투쟁한 진보신당 의원단 동지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연대의 힘이 이어졌으면 합니다. 몸도 마음도, 주변도 추운데 오랜만에 훈훈한 마음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