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한진중공업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다시 듣고 싶습니다.

터사랑1 2010. 2. 7. 06:42

정리해고 중단하라!!

서울 용산구 갈월동에 가면 한진중공업 건설부문 본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지난 2일 아침부터 매일 150여명에서 230여명의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들은 매일 새벽 1시에 부산과 울산의 공장에서 출발, 새벽 6시경에 본사앞에 도착해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출근선전전, 아침 집회를 하고 국회 앞, 서울역 등으로 흩어져서 ‘정리해고 중단’을 요구하는 선전전을 갖습니다. 오후 5시에 다시 갈월동에 모여 마무리 집회를 하고 내려갑니다. 그리고 다른 조에 속한 조합원들이 다시 새벽 1시에 다시 서울로 출발합니다.

 

 

 

이렇게 5일까지 이어졌고, 9일에서 11일까지 이어질 예정입니다. 조선소에 일하는 노동자들이 건설부문 본사에 온 것은 1998년 IMF 당시 부도 일보직전의 한진건설을 한진중공업에서 인수하면서 살렸고, 지금은 조선소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모는 정리해고를 하겠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해고한다며, 현금배당을 겨우(?) 120억을 배당받은 최고 경영진이 출근하는 공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와 관련해서는 http://www.ilabor.org/news/articleView.html?idxno=341)


24일만의 단식 중단

5일 오후 마무리 집회에 함께 하기 위해 갈월동으로 가면서 부산양산지부 간부와 통화를 했습니다. 무엇보다 1월 13일부터 이어오던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지도위원의 몸 상태가 우려되었기 때문입니다. 3일 저녁에 ‘백혈구 수치가 정상인보다 많이 낮고, 조금만 더 낮아지면 영원히 회복이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고, 이 때문에 고심하는 많은 사람들을 봤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김진숙지도위원은 조합원들이 집회를 마치고 찾아와 ‘우리가 싸우겠다. 단식을 풀고 함께 싸우자.’는 요구가 이어지면서 24일만인 5일 오후 1시경 단식을 풀고, 병원으로 갔다는 연락을 접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단식중단과 관련해서는 http://www.ilabor.org/news/articleView.html?idxno=356)


6년넘게 따뜻한 방에서 자지 않았다!

지난 1월 13일 김진숙지도위원은 “죽거나 병신돼가며 평생을 일했던 아저씨들이 죄인처럼 쫓겨가는 건 눈 뜨고 지켜볼 수가 없었습니다. 2003년도에 당했던 일을 또 똑같이 당할 순 없었습니다. 김주익지회장, 재규형한테 부끄러워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오늘부터 단식에 들어갑니다.”라며 단식에 들어갔습니다.

노동조합의 투쟁과정에 많은 사람들이 ‘단식’을 하게 됩니다. 경황 없이 급하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최소한의 준비를 하고 효소등을 복용하면서 하게 됩니다.(대부분 오래 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김진숙지도위원은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고, 그야말로 물만 먹으며 단식을 이어갔습니다. 체력 또한 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번 단식을 통해서 부산지역의 간부들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고 합니다. 김지도위원은 2003년10월 김주익열사가 85호 크레인 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후로 따뜻한 방에서 자지 않았다고 합니다. 6년 이상을 그렇게 살아오셨고, 체력이 정상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2003년 당시에도 한진자본은 일방적인 구조조정을 시도했고, 당시 지회장이었던 김주익 열사는 고공 크레인 위에서 농성을 하던 중 목숨을 끊었고, 보름 뒤 곽재규 열사가 10m 도크 아래로 몸을 던졌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투쟁과 관련해서는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6443)


동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지역에서 교육업무를 맡고 있을 때 ‘잔업 특근에 찌들어 있는 조합원들에게 뭔가를 들려 줄 수 있는’ ‘회사가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하는데, 조합원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강사를 요구하면 저는 첫 번째로 김지도위원을 추천했습니다. 제가 일을 하기 전부터도 많은 사업장에서 교육을 해 왔습니다. 김지도위원의 교육은 뛰어난 이론을 제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성용접사로 살아오면서 함께 투쟁하던 얘기들, 다른 사업장에 교육을 가면서 보게되는 조금씩 보수화되고 있는 정규직 노동조합 간부들과 어렵게 투쟁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얘기를 전달해 주셨고, 이것이 조합원들을 그리고 간부들을 움직이게 했습니다.

 

<2007년 2월 23일 민주노총 경남본부 강당에서 금속노조 경남지부 신임간부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고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 

 

그리고 김지도위원이 큰 집회에서 한 투쟁사나, 열사들의 추모사는 그 자체로 교육 교재가 되어 간부들과 조합원들과 함께 읽기도 했습니다.

 

작은 체구임에도 카랑카랑하게 울려퍼지는 동지의 목소리는 ‘신자유주의’와 ‘구조조정’‘경쟁’이 판치는 세상에서 ‘우리 조합원이라도 챙겨야지’라는 생각에 머물고 싶어하는 정규직 노동조합 간부와 이른바 상급단체 간부들의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도에서, 다대포에서, 울산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30여년을 근무했기에 이력이 났을 법도 함에도 서울 골바람 추위에 몸을 움츠리고 있는 조합원들에게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빨리 몸 회복하시고, 카랑카랑한 김 지도위원의 목소리를 다시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