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사회를 보는 눈

작은 반성

터사랑1 2011. 1. 10. 17:33

배달호열사 8주기

 

<배달호열사 8주기에 맞춰 발간된 추모평전 '인간의 꿈'을 헌정했습니다.>

 

 

 

 

<배달호열사 묘소 앞에서 간단한 결의를 밝히고 있는 참가자들>

 

9일 오전 양산 솥발산에 다녀 왔습니다.

배달호열사의 8주기 기일이었고, 열사회에서 참배일정을 잡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솥발산은 눈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가급적 해다마 진행되는 참배에 함께 하려 하지만, 잘 안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꼭 참배를 하고자 했습니다.

그것은 양산 솥발산에 배달호열사도 계시지만, 김주익, 조수원 열사 등 영남지역 40여명의 열사들이 잠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열사가 이어지던 2003년

군사독재를 이어, 문민정부, 참여정부가 들어섰지만 노동자들의 상황을 별로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자본의 탄압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노동자들은 죽음으로 항거해야 했습니다. 신년 초 배달호열사의 분신에서, 한진자본의 구조조정과 노조탄압에 맞서 129일의 85호 크레인 농성을 하면서 자결에 이른 김주익열사, 도크에 몸을 던진 곽재규 열사로 이어졌습니다.

 

8년, 더욱 악날해진 자본

그리고 8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자본은 더욱 악날해지고, 정부의 탄압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8년전에도 구조조정을 요구하던 한진자본은 지금도 자신들의 경영에 대한 책임은 조금도 지지 않으면서,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있습니다.

8년 전, 부산역에 모인 수많은 노동장와 민중들에게 차마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듣지 못할 추모사를 했던,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김진숙동지가 한진자본의 구조조정 중단을 요구하며 85호 크레인 위에서 6일부터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본과 정부는 잘못된 구조조정의 중단이 아니라 법원으로 부터 발부받은 '퇴거명령서'를 바탕으로 김진숙 지도위원마저 죽음으로 내 몰려 하고 있습니다. '친기업 정부'를 바탕으로 자본은 더욱 악날해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

 

 

<배달호열사 묘에서 조금 더 왼편 위쪽으로 올라가면 김주익열사의 묘가 있습니다.>

 

작은 반성

8년, 지금 상황은 본질적으로 변한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는 조금씩 위축되고, 나태해져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시 스스로를 추스리며, 눈덮인 솥발산을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결의를 되새기며, 2003년 김진숙지도위원의 추모사를 올려봅니다.

 

 

 

[2003년 부산역 노제 김진숙 지도위원 추모사]
이제 천막 농성장을 걷고 현수막을 걷어내고 청소를 하고 산자들은 살아서 수고하셨다는 인사를 해야할 차례입니다.
정말 수고하셨다는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냐는 인사를 함께 나눌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덥수룩한 수염을 자랑스럽게 올려다보며 손바닥이 얼얼하도록 박수를 치고 취하도록 막걸리를 돌려 마실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다들 이겼다는데 20년을 싸워도 못했을 걸 한꺼번에 쟁취했다는데 축하한다는 인사도 축배를 나눌수도 없는 참으로 서러운 승리.
번쩍 들어 헹가레를 쳐야할 주인공을 땅에 묻어야 하는 이상한 마무리.
이렇게 끝낼 수도 있는 걸 이렇게 끝낸다고 회사가 망하는 것도 나라가 뒤집어지는 것도 아닌데 기어이 생목숨을 둘이나 잡아먹고야 끝이 난단 말입니까?


시신 하나는 수십미터 크레인에서 끌어내리고 또 하나는 수십미터 도크바닥에서 끌어올려 치르는 이 기가막힌 장례식.
억울하다는 말로도 분하다는 말로도 치가 떨린다는 말로도 다 뱉아낼 수 없는 이걸 다 어찌해야 합니까?
두번째 상복을 입는 아저씨들.
지손으로 뽑은 위원장의 관을 두번째 매야 하는 아저씨들.

 

이번엔 상여틀을 한꺼번에 두개를 짜고 부활도도 두개 만들고 만장도 곱절로 만들면서 곱절의 분노가 절망으로 되돌아온 세상.
한 공장에서 30년을 일한 노동자가 빠져 죽거나 깔려 죽거나 떨어져 죽거나 터져 죽거나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았다 한들 구조조정으로 짤리는게 아니면 동생뻘되는 새파란 젊은 목숨의 관을 13년만에 다시 매야 하는 나라에서 군사정권과 참여정부의 거리는 얼마만큼입니까?

 

박창수 집행부 때도 그랬고 조길표 집행부 때도 그랬고 박재근 집행부때도 그랬고 불법이든 합법이든 어차피 파업 끝나면 수십명 줄줄이 감빵가고 손배가압류로 집따까리 월급 다 날라갈텐데 이꼴 저꼴 안보고 차라리 잘 갔다 그라자. 그래야 저승길이라도 편히 갈거 아이가.
아저씨들이 그걸 위로라고 하는데 개혁은 도대체 어느 구석에서 이루어지고 있는겁니까?

 

세상이 바뀌었는데 위원장 하나는 죽어서야 감옥문을 나서고 또 하나는 죽어서야 159일만에 크레인을 내려오는 이 몸서리나는 역사의 반복속에서 91년 여섯살 용찬이의 상복과 2003년 일곱살 준하의 상복은 뭐가 어떻게 다르다는 겁니까?
꼬질꼬질한 작업복 차림으로 서면에서, 남포동에서 서울에서 "우리 지회장님 죽었습니다" 유인물을 나눠주던 우리 아저씨들.
30년 일한 공장에서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길거리로 내몰리는 기막힌 일을 막아보자고 시작한 싸움이 더 기가막힌 일로 끝나버린 아저씨들, 이제 어쩌실랍니까?
그 크레인을 하루에도 수십번씩 올려다보고 살아야 할텐데 이제 어쩌실랍니까? 그 크레인에 물건 달아올리고 그 크레인에 싸이렌 소리를 하루에도 몇번씩 들어야 할텐데 그 짓을 어찌하실랍니까? 지회장님이 여러분들을 원망하지 않을겁니다.
여러분들을 원망하는 마음이 손톱만큼이라도 있었다면 배가 빠지고 대오가 줄었을 때 아마 크레인을 내려오셨을 겁니다.
잔업 한대가리에 목숨 걸어야 한달 백몇십만원 그 돈에 새끼들 많이 걸리고 옷이 걸려 있는 그 참담한 사정을 지회장님이 왜 모르시겠습니까? 지회장을 크레인에 올려놓은채 작업장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던 그 심정들을 왜 모르시겠습니까?

 

진숙이 니만 복직을 못해 우짜노. 걱정해주시던 아저씨들.
18년 케케묵은 해고자의 복직과 일방중재 철폐.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을 해내신 교섭위원 동지들. 정말 고맙습니다.
형제가 나란히 해고됐던 정식이형. 이정호 직대, 영제형, 박성호 동지, 상규형. 그 분들의 꿈같은 복직만으로도 20년 가까운 마음의 짐을 이제야 덥니다.
사측의 돈 얘기를 막아 주신것만으로도 전 너무나 고맙습니다. 전 남겠습니다.
한진중공업의 해고자로, 아직도 끝나지 않은 투쟁으로, 노동해방이 되기 전까진 절대로 끝나지 않을 전선으로 자랑스럽게 남겠습니다.
저마저 복직된다면 우리 아저씨들. 이제 다 끝났다 생각하실거 아닙니까?
착해 빠져서 맨날 당하고 평생을 회사에 언론에 정부에 속고 사신 아저씨들.
조남호가 정말 인간됐는갑다 또 철썩 같이 믿으실거 아닙니까?
제 젊은 날의 청춘을 그리움으로 들끓게 했던 아저씨들.
아저씨들이 보고싶어 회사앞에 갔다가 온몸이 시퍼렇게 두들겨 맞고 돌아가 누우면 자취방 천장에 하나가득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 주시던 아저씨들.
조용필도 있고 나훈아도 있고 하고 많은 우상중에 하필 제 젊은 가슴을 설레게하던 우상이었던 아저씨들.
40k짜리 홀다를 척척날아 훌쩍 둘러매고 직각의 사다리를 한손으로 오르던 참 멋지던 아저씨들.
도면을 안 보고도 모리야기 올릴 땐 모리야기 올리고 하진 땅길땐 하진 땡기고 그 큰배를 뚱땅뚱땅 요술처럼 만들어내고 세상천지 못만드는게 없던 참 신비로왔던 아저씨들.

 

그 때 우리 해고자 세 사람은 그 아저씨들이 따신 국물에 쌀밥이 반쯤은 섞인 점심을 잡숫는걸 보고 싶었습니다. 손가락이 짤리고도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던 그런거만이라도 바꿔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될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 때 우리 해고자 세 사람은 토큰 하나가 없어 전포동에서 영도까지 뛰어가면서도 힘든 줄 몰랐고 꼭두새벽 유인물 뿌리러 가는 길에 남의 집 대문앞에 제사 지내고 내논 사자밥을 훔쳐 먹으면서도 부끄러운 줄 몰랐습니다.
대공분실도, 유치장도, 감빵도 무서운줄 몰랐습니다.
그 길에 박창수 동지가 있었고 김주익 동지가 있었고 재규 형님이 있었습니다.
오늘 박창수 위원장 곁으로 김주익 동지를 곽재규 동지를 보냅니다. 박창수 동지, 정말 미안합니다.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김주익 지회장님, 곽재규 형님, 잘 가세요. 뒤도 한번 돌아보지 마시고 휑하니 가세요.
21년을 28년을 소처럼 일해준 댓가를 체포영장에 손배가압류 딱지로 되둘려주던 한진자본.
다시는 영도쪽으론 고개도 한번 돌리지 마세요.


그래도 41년을 살았던 세상에서 영정으로 쓸 사진하나 변변히 없어 결혼식 날 가장 행복한 웃음으로 찍은 사진이 영정사진이 되는 이 딴 나라에는 다시는 되돌아 오지 마시구려 오늘 부터는 다리도 쭉 뻗고 샤워도 맘껏 하시고 태풍이 불어도 끄덕 없는 좋은 나라로 가세요.
준엽이 혜민이 준화 령욱이 경민이 그 어린 것들이나 한번씩 챙겨주고 모쪼록 살펴 주시고 들여다 봐 주시구려 준엽아 혜민아 준하야 령욱아 경민아 정말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