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가는 모습/백두산기행

백두산을 가다 - 윤동주를 찾아서

터사랑1 2011. 10. 4. 08:25

용정 시내에서 점심을 먹고, 용정중학교로 왔습니다.

(KBS 1박 2일의 백두산 편에서 용정지역 학생들을 모아놓고 어려운 조건에서 1박2일 멤버들이 콘서트를 했던 학교입니다)

이곳은 윤동주시인, 문익환목사 등 우리에게 익숙한 분들이 다녔던 연변지역의 민족학교 역사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건물은 옛 대성중학교를 복원 해 놓은 것입니다. 대성중학교 건물 앞에는 윤동주시인의 시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대성중학교를 복원하는데, 교과서 출판사로 유명한 금성출판사가 한 몫을 했나 봅니다.

 

용정중학교 역사관에서 현직 교사중에 한 분이 연변지역의 민족학교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밑에 있는 연변지역 민족학교의 이름에 '동'자가 많이 들어갑니다.

동녁 동(東)자를 쓰고 있는데, 떠나온 조선을 향한 우리 선조들의 마음이 담겨져 있다고 합니다.

그 옛날에 이렇게 많은 민족학교가 세워질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선조들이 교육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 이시영 일가를 비롯한 우리 선조들이 연변에서 땅을 구입하거나, 개간할 때 '학전'을 따로 떼었다고 합니다.

그러한 조상들의 노력이 윤동주시인과 문익환목사님 등 소중한 우리들의 자산을 만들수 있었나 봅니다.

 

 

 

윤동주시인(오른쪽 사진 맨 오른쪽)과 문익환목사님(오른쪽 사진 뒤줄 가운데)의 사진입니다. 1917년 생으로 동갑입니다.

 

용정중학교 역사관 바로 옆에 이상설 기념관이 있습니다.

이상설 기념관은 친일자본의 의혹을 받고 있는 두산그룹에서 지원을 했더군요. 자신들의 역사에 대한 참회일까요?

한국에서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을 하는 것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기념관 1층에는 윤동주교실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옛 교실의 모습을 꾸며놓고, 교복도 입어볼 수 있습니다.

사진촬영부터 교복착용등에 따른 비용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대성중학교를 나와서 차를 타고 외곽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윤동주시인의 생가가 있는 '명동'을 찾기 위해서 입니다. '명동'은 '동쪽을 밝히고자 한다'는 뚯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곳도 동녁 동(東)자를 쓰고 있는데요, 고향을 향한 우리 선조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표지석은 거제에 있는 해금강조경이라는 곳에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만들어서 가져온 것인지, 용정에 와서 제작한 것인지는 확인을 못했습니다.)

 

윤동주시인의 생가입니다. 생가에서 나온 기와에는 태극무늬가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명동지역의 우리 선조들이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고자 하는 노력이 담긴 것이겠지요.

 

 

생가 뒤편에서 멀리 쳐다보면 '선바위'라고 하는 바위가 보입니다.

윤동주시인은 선바위를 보면서, 자신의 꿈을 키워왔다고 이 지역 분들은 설명을 하고 계십니다.

(용정 일정에는 연변대 김태국교수가 계속 함께하면서, 지역에 얽힌 많은 내용을 설명 했습니다. )

 

생가에 들어가다 오른편에 보면 명동역사전시관이 있습니다.

예전 명동교회 자리라고 합니다.

지금은 명동지역의 역사를 담은 교육작으로 활용되며, 명동지역 조선족 분들이 돌아가면서 자리를 지키고 계십니다.

명동학교 창시자이기도 한 김약연 선생의 이력이 나와있기도 합니다.

김약연선생은 유학자였는데, 학교를 짓기 위해 돈을 모으는 과정에서 기독교를 믿고 있는 분들로부터 재정지원을 하겠으니, 교회도 짓고 하자는 제안을 받고, 고민 후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명동학교를 시작으로 연변지역 많은 민족학교를 짓는 과정에 열성적으로 결합을 했다고 하며, '연변지역의 사도바울'로 불리워지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