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가는 모습/이런저런 일상

워커바웃

터사랑1 2012. 8. 7. 19:19

김하경 선생님의 두번째 소설집, 워커바웃

진동면 신기리에 터잡고 계신 김하경님의 두번째 소설집 '워커바웃'이 출간된 지 2개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첫번째 소설집 '속된 인생'도 2005년 출간된 후 2012년 7월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워커바웃이란?

워커바웃이란, 일정 나이가 되면 성인 남성으로 인정받기 위해 오지로 나가 몇 달 간을 생활해야하는 호주 원주민의 통과의례를 뜻한다고 합니다. 유아기와 청소년기를 거치며 성인이 되어가며,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가는 모습을 그리는 것이겠지요. 동명의 영화가 만들어져 있기도 하다네요.

 

삶을 이야기로!!

이 소설집에는 다섯개의 단편과 하나의 중편소설이 실려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소설을 픽션(fiction, 허구)라고 알고 있습니다. 김하경 선생님의 소설들은 픽션이 아니라, 논픽션(nonfiction, 사실을 바탕으로 쓰여진 산문, 수기 등)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결국 우리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소재로, 소설을 썼다는 것이겠지요. 이것은 하나의 사건이나 상황을 기록으로 남기는 또다른 방법중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는 글을 통해 기록을 남기고 있지만, 문자가 없던 시절의 일들은 많은 세월을 이어가며 켜켜이 쌓여 신화, 전설로 우리에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순서대로 한번 볼까요?

누가 죽었어요? 는 교통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진 한 사람을 두고 산소호흡기를 떼고 장례를 치르기로 한 가족과 같은 교통사고를 당했던 친구들이 겪게 되는 곤혹감을 가볍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주변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들을 웃으면서, 또는 한숨을 쉬면서 읽어가게 될 것입니다.

 

초란은 예전 적극적인 노동조합 활동을 했었지만, 지금은 현장을 떠나 친환경 유정란을 생산하는 양계업을 하는 전직 노동자의 이야기입니다. '떠나온 자'로서의 부채의식을 갖고 살아가던 일상에서, 아직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는 후배로부터 온 전화를 받으면서 일으키는 심적 갈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많은 심적 갈등속에서 다시 옛일을 회상하고, 일상속에서 자신이 갖고 있던 부채의식을 자가사료를 바탕으로 '초란'을 받아내는 과정에서 승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든 내용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초란은 우리지역 사업장 중 하나인 S&T중공업(옛 통일중공업)의 상황을 근거로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S&T중공업에서도 민주노조를 지켜내기 위한 두 명의 선배노동자(열사)가 있었고, 이들의 정신을 이어받기위해 노력하던 집행부가 해고되는 과정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http://blog.daum.net/mshskylove/15766502  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지르 자자! 찌찌!는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 중년여성이 가부장적인 남편이자 아버지의 반대에 대한 두려움을 늦둥이 딸을 촛불집회에 나오지 못하게 하려고, 언어장애를 앓는 어린 손녀를 맡기고 큰딸과 함께 집을 나와 촛불집회에 참석하게 됩니다. 촛불집회에서 새로운 매력(?)을 느끼는 과정에 늦둥이 딸과 언어장애를 앓고있는 손녀를 만나게 되고, 손녀가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너무나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전히 가부장적인 남편이자 아버지의 모습과 함께!!

 

비밀과 거짓말은 영화 <화양연화>를 남편과 함께 보고 잠든 부인이 돌연 ‘이혼하자’는 한 통의 메일만 보내고 사라지면서 시작됩니다. 사라진 아내를 찾아가면서 아내를 둘러싼 비밀을 하나하나 알아가게 되고, 비밀을 지키기 위한 가족간의 거짓말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이 소설의 배경은 현재 이른바 '진보정당'의 모습 중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조직' '대의'를 말하면서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떠 맡기는 퇴행적인 행위들, 각종 권력을 둘러싼 내부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소설집의 표제작인 워커바웃의 일인칭 화자 ‘한홍이’는 10여 년 만에 우연한 기회에 고향 율포에 다녀오게됩니다. 김하경 선생님은 주인공이 율포를 다녀오는 과정이 호주 원주민의 전통인 ‘워커바웃’처럼 자신의 삶의 근원을 만나고 돌아와 성인이 되는, 성장과 성숙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소설은 2008년 말 울산 현대미포조선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현대미포조선은 당시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법원에서 '당신네 직원이다'는 판결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어졌지만, 또다른 한 축인 정규직 노동조합은 이를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회사는 정규직 노동조합의 외면을 바탕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 해 온 정규직 노동자를 탄압하기 시작했고, 결국은 회사 건물에서 뛰어내리게 됩니다.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http://blog.daum.net/mshskylove/15766465  )

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 하고자했던 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투쟁이 이어졌고, 현대미포조선이 오히려 탄압으로 일관하자 현대미포조선 현장조직 '현장의 소리' 김순진 의장과 민주노총 울산본부 이영도 본부장 권한대행이 굴뚝에 오르게 됩니다. 이영도 권한대행은 소설에서와 비슷하게 혼자 오르게 두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른다는 우려속에 집행유예 기간중임에도 함께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회사의 야비한 탄압에 맞서 고공농성을 하는 농성자에게 음식물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였고, 실제로 글라이더를 띄워 음식물을 공급하기도 했습니다.

 

둘례전은 중편소설인데요, 불행한 가족사를 가진 여성과 섬 출신의 고아 청년 사이에서 벌어지는 고전적인 팜므파탈적 사랑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소설집 전반에 이르는 노동자들의 삶 등을 다룬 노동문학이 아닌 범위까지 다루고 있다고 문학평론가님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속된인생도 개정판이 최근에 나왔습니다. 모든 책들은 인터넷서점 등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