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사회를 보는 눈

세월호 때 이렇게 민첩했으면

터사랑1 2014. 5. 22. 23:07

한 노동자의 죽음

지난 5월 17일 오후1시 30분경 강원도 강릉시 정동진 곰두리 연수원 뒤 공터에서 한 노동자가 승용차안에서 숨진 채 지역주민에게 발견되었습니다. 그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산분회장을 맡고 있던 염호석이라는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젊은 노동자였습니다.

그는 “빛을 잃지 않고 내일도 뜨는 해처럼 이 싸움(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임단협 투쟁 – 편집자 주) 꼭 승리하리라 생각해서” 정동진을 자신의 마지막 삶의 위치로 선정했다고 유서를 통해 밝혔습니다. 그리고 “시신을 찾게 되면 우리 지회가 승리할 때까지 안치해 주고, 승리하는 날 화장하여 이곳(정동진-편집자 주)에 뿌려줄 것”도 유서를 통해 요청했다. 가족에게도 “제가 속한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그때 장례를 치러 주세요. 그리고 저의 유해는 남김없이 해가 뜨는 이곳 정동진에 뿌려주세요.”라는 유서를 남겼습니다.

 

 

약속을 지키겠다!!

염분회장의 죽음을 접한 조합원들은 슬픔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유족과 함께 강릉으로 올라가서 유서에 따라 움직이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염분회장의 아버지도 장례와 관련한 사항을 노동조합에게 위임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유족의 동의하에 강릉의료원에 있던 염분회장의 시신을 서울의료원 강남분원으로 옮겼습니다. 이는 삼성전자서비스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염분회장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삼성전자서비스가 질 것을 요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음날인 5월 18일 아침에는 오랫동안 헤어져 살았던 염분회장의 생모가 직접 서울로 올라와서 노동조합에 장례와 관련한 모든 것을 위임한다고 약속도 했습니다

 

112신고 10분만에 300명의 경찰 투입

<시신을 빼돌리기 위해 서울의료원 강남분원으로 들어오는 경찰에 맞서 조합원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사진 ;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그런데 부친은 서울의료원 도착 후 입장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노동조합 관계자들은 계속해서 부친에게 유언에 따라 노동조합이 장례를 주관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5월 18일 오후6시 20분경에 갑자기 경찰들이 장례식장에 들이닥쳤습니다. 그들은 “유족으로부터 6시 10분 경 장례를 치룰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112 신고가 들어왔다”고 하면서 신고한 지 10분만에 무려 300여명의 경찰이 장례식장을 들이닥쳤고, 이들은 캡사이신 성분의 최루액을 쏘는 등 물리적으로 밀고 들어와 8시 경 시신을 빼돌렸습니다. 이 과정에 25명의 조합원들이 연행되었고, 한 명은 ‘장례절차 방해’라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습니다.

 

시신에 이어 유골함까지 빼돌려

<시신에 이어 유골함까지 빼돌리려는 경찰에 맞선 조합원들. 경찰이 캡사이신성분의 최루액을 뿌리고 있습니다. 사진 ;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이렇게 시신을 빼돌인 유족들은 부산 행림병원에 빈소를 차렸지만 이후 장례절차에 대해 입을 다물었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은 부산 인근의 화장장에 일일이 확인을 했습니다. 결국 부산과 밀양, 두 곳에 예약이 된 것을 확인하고 실제로 가 보기로 하면서 20일(화) 오전에 밀양화장장에 일부 조합원이 도착했을 때 이미 염분회장의 시신은 화장절차를 밟고 있었습니다.

당시 조합원들고 함께 했던 생모는 “유골함이라도 달라”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화장을 진행할 때는 현장에 없었던 아버지가 도착하자 경찰병력이 들이닥쳐 유골함을 빼 돌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염분회장의 유해가 어디에 안치되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결국 행림병원에 차린 빈소는 조합원들의 눈을 가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 농성장에 염호석분회장의 영정이 도착했습니다. 사진 ; 민중의 소리>

 

조합원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영정이라도 가져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했고, 이제 삼성전자서비스 서초동 본관앞에 영정을 두고 투쟁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112신고 5분, 10분에 300명 넘는 경찰이 동원될 수 있나?

이 과정에 보인 경찰의 모습에 우리는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경찰은 서울의료원에서는 112에 신고한 지 10분만에 300여명을, 충청미디어등의 언론에 따르면 밀양에서는 5분여만에 350여명의 병력을 동원했다고 합니다.

염분회장의 죽음과 관련해서는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졌고, 유서까지 공개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밀양에서는 생모가 스스로를 밝히고, 112에 신거를 하기도 했지만 쌍방의 의견을 듣는 과정도 없이 물리적으로 밀어 붙인 것입니다.

 

우리는 4월 16일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 침몰된 이후 단 한명의 생명도 구해내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를 목격했습니다. 하지만 염분회장의 시신을 둘러싼 경찰의 태도는 사뭇 달랐습니다. 국민들의, 어린 학생들의 절규에는 귀를 닫았던 경찰이, 기업의 애로(이건희회장이 입원한 병원 부근에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의 시신이 있는 것 - 편집자 주)에는 전광석화처럼 대응을 하는 것 처럼 보이는군요.

 

 

완벽한(?) 작전을 구사하듯 시신과 유골함을 빼돌린 경찰, 세월호 때 그렇게 민첩했으면 적어도 몇 명의 생명이라도 구할 수 있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