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가는 모습/백두산기행

2015 백두산 평화감성여행 - 여순감옥 (2)

터사랑1 2015. 8. 23. 19:06

2015년 7월 25일부터 29일까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경남지부 / 부산지부 / 경기지부가 주최하고,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여행사업단 [더하기 휴]에서 주관한 '2015 백두산 북중접경지역(대련-여순-단동-백두산-용정-연길-훈춘-도문) 평화감성여행을 다녀왔습니다.

5년전에도 큰딸과 비슷한 코스를 다녀왔고, 이번에는 작은 딸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늦게 올리네요.

 

 

우리에겐 여순감옥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중국 현지인들은 '여순일아감옥'으로 부릅니다.

 

여순일아감옥은 1902년 러시아가 짓기 시작해서 19042월에 러일전쟁이 시작되면서 85실만 짓고 중단했으며 전쟁 시 잠시 야전병원과 군대병영 장소로도 쓰였다고 합니다.

 

일본군이 여순을 점령 후 감옥이 작다고 생각해 러시아가 지은 기초상에서 253칸으로 증축했으며 동북지대에서 제일 큰 감옥으로 변했습니다. 감옥 주위에는 높이 4m, 길리 725m의 호백 벽돌로 싼 담이 있으며 점유 면적이 26,000(평 단위로 환산하면 7,800여평이 됩니다. 교도소나 구치소의 크기가 확인된 자료가 별로 없지만, 현재와 비교하면 그렇게 큰 면적은 아닙니다. 요즘처럼 재소자에 대한 체육활동보장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죠)이 되어서 2,000여명의 죄수를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감옥은 인체실험 의혹이 제기되었으며, 2층으로 된 사형실 뒤편 야산에 묻힌 사형수의 수를 헤아리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교도소 내에는 중국어와 한국어, 그리고 영어로 된 안내판이 부착되어 있으며, 안중근의사 관련 특별관을 마련해 놓기도 했습니다.

 

 

<위층에서 아래층에 대한 감시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또 다시 검신실을 만났습니다. 이곳은 작업장에 가기 전에, 그리고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거쳐야 하는 검신실입니다. 철저하게 감시했던 상황을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당시 작업에 사용된 기계들입니다. 인쇄, 프레스 등의 작업을 했음을 보여줍니다.>

 

<여순감옥의 어려움을 그림으로 형상화 해 놓은 것입니다.>

 

<1편에서 말씀드렸듯 흰색 건물은 러시아가 지은 건물입니다. 붉은색 건물은 일본이 지은 건물입니다.>

 

 

 

<여순감옥의 의무실입니다. 인체실험에 대한 의혹이 있다고 합니다.>

 

 

<의무실에서 나오면 조금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입니다. 길을 따라 올라가면 사형실이 보입니다. 이 건물은 2층 구조입니다.>

 

 

<사형실 내의 모습입니다. 밑에 보이는 통으로 죽은 사형수의 시체를 담았다고 합니다.>

 

<건물에 들어서면 한편에 두 개의 방이 있습니다. 이곳은 대기실이라고 합니다.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질까요?>

 

 

< 앞에 얘기했던 시체를 담는 통입니다.>

 

<사형실을 나오면 높은 벽이 보이고, 문이 하나 있습니다. 이 문으로 시체를 들고 나가서 뒷편에 묻었다고 합니다.>

 

<뒷편 시체가 있던 곳의 모습을 재현한 모습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의지를 지키고 민족의 독립을 위해 싸운 분들을 형상화 한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