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사회를 보는 눈

나에게 5.18은?

터사랑1 2016. 5. 18. 13:55

5.18 36주년

5.18 광주민중항쟁이 발생한 지 36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3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광주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수천명의 민간인을 죽이고 다치게 만들었던 발포책임자들은 '모르쇠'만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전두환, 노태우는 대통령을 하고, 이후 '반란 및 내란'등의 혐의로 무기징역과 17년형을 받았지만, 여전히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등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임을 위한 행진곡이 '종북 노래'라는 어처구니 없는 논쟁도 이어지고, 당연하게 '제창'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조차 막혀있는 상황입니다. 


<보수라는 표현도 아까운 수구세력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종북노래라고 하는 속에, 오늘(5월 18일) 자 동아일보 기사입니다. 

이 기자는 탈북기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탈북기자조차 '종북 노래'가 말도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네요.>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이 이어지는 속에 제가 5.18을 접하게 된 과정을 간략히 정리해 봅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5.18은 저를 비롯한 60년대에 출생한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이었습니다. 

5.18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던 것은 1986년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이하 넘어 넘어)라는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형이 갖다 놓은 것으로 보이는 책을 집에서 봤습니다. 책을 접할때만 해도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있나'라는 생각이었습니다. 


1987년 처음 본 광주 비디오

1987년에 고등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인근에 있던 경남대학교 축제에 우연히 들렀다 '광주 비디오'를 보게 되었습니다. 넘어 넘어 책을 통해서 본 내용이 화면을 통해 다가왔을 때 피가 거꾸로 솓는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민간인에게 총을 쏘고, 쓰러진 사람들의 모습은 책이 거짓이 아니라는 수준을 넘어,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 왔습니다. 



대학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배우다

그렇게 1988년 대학에 입학을 했습니다. 1988년은 '87년 민주화운동'의 영향으로 입학과 동시에 각종 집회가 이어졌습니다. 자연스럽게 '임을 위한 행진곡'을 배웠고, '광주'에 대한 좀 더 깊은 내용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미국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미국은 12.12 군사쿠테타로 올라온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세력이 광주에서 무고한 시민을 학살하는 과정에 협조를 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군사작전권'이 없습니다. 한국전쟁 당시에 미군에게 군사작전권을 넘겼지요. 즉, 대규모의 군사이동과 민간인을 향한 발포 과정에 미국(미군)의 승인 또는 묵인이 있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민간인에 대한 발포등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의 동북아지역에서의 영향력이 그대로 이어질 수 있느냐에 대한 관심만 있었던 것입니다.   


광주민중항쟁 당시에 미 항공모함이 한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최소한 미국이 민간인 학살과 관련한 중재라도 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80년 광주민중항쟁 이후 우리나라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이어졌고, 이는 미 문화원 방화사건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저 역시도 '80년 광주'를 공부하면서 미국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져 갔습니다.


그리고 공동체입니다. 

1980년 5월 18일 이후 광주에는 경찰이나 군대 등 권력기관은 민중들과 따로 있었습니다. 특히 5월 21일 공수부대의 무차별 발사 이후 시민군이 무장을 하고, 철저히 고립된 속에서 항쟁을 이어왔습니다. 

일주일 이상 외부와 완전히 분리된 광주는 너무나 평온했다고 합니다. 경찰도 없고, 군인도 없었지만 '살인' '강도' 등의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역할을 부여하면서 '공동체'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통제기구로서의 국가기구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사회보다 질서 정연하고, 자유로운 과정이었다고 합니다. 군대, 경찰, 행정기관 등 국가기관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기관이 없어도 자유로운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짧은 기간이지만 보여준 것이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가 아닐까 하는 구상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노동해방문학에 실렸던 박노해의 '윤상원 평전'도 있고, 다른 이의 윤상원 평전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나에게 5.18은?

처음 광주를 갔던 것은 1988년입니다. 이후 해년마다 광주를 갔던 것 같습니다. 1990년에는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골리앗 투쟁에 대한 연대투쟁 과정에 수배가 되어 있던 총학생회장을 도와가며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녀왔습니다. 


여전히 광주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과 만들 수 있다는 답을 함께 주는 것 같습니다. 


국가권력이 국민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보호해야 하고, 권력기관이 없더라도 자유로운 생활공동체를 만들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