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사회를 보는 눈

동류의식(同類意識)

터사랑1 2017. 12. 20. 13:53

이 글은 노동사회교육원 회지에 함께 실린 글입니다. 


171213일 저녁8시경 서울대병원과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서울대병원노조)가 임금 3.5%등에 대한 합의를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날 발표에서 눈길을 끈 것은 임금 인상보다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정규직화 합의였습니다.

 

서울대병원노조에 따르면 비정규직 581명 중 무기계약직(130시간 근무자) 298명을 올해말까지 전일제(209시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리고 기간제 노동자 283명 중 7월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가이드라인발표 당시 6개월 이상 근무한 상시업무 기간제 노동자의 경우 2017년 내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고 그 외 기간제 노동자는 일정한 절차(공개채용이 아닌 내부 절차)를 거쳐 20181/4분기 내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또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노동자는 20191/4분기까지 순차적으로 전일제(209시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와 별도로 간접고용비정규직에 대해서는, 본원, 보라매병원, 강남센터 운영에 필수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고용승계(전환채용)하되, 정규직 전환방식은 노사·전문가협의기구에서 결정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습니다.

 

서울대병원노조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합의는 문재인정부가 고용노동부를 통해서 추진중인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이 일부 정규직 노동자들이 형평성 문제’ ‘무임승차론을 들먹이며 반대함에 따라 속도가 지지부진한 것과 대비되는 모습입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노동조합은 1987년 이른바 87년 대투쟁을 통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30년이 흘렀습니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을 통해서 많은 노동자들이 공돌이, 공순이에서 노동자로 불리워졌고, 시민으로서 대접을 받아왔습니다. 그리고 87년 투쟁당시에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는 큰 이슈가 되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도 중공업, 조선소 등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부 있었지만 임금등에 있어서 정규직 노동자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들 간 임금격차도 크지 않았습니다. 대기업이 몇 개의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 자신이 부속품처럼 일을 해 왔다면, 중소사업장의 노동자들은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 자신의 참가폭이 넓었습니다. 밀링, 선반등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은 몇 년 후 기계라도 한 대 들고 나가서 사장소리 한번 들어 봐야지라는 생각을 가진 노동자들이 많은 시기였고, 다양한 제품을 접할 수 있는 중소사업장을 일부러 선택하는 노동자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87년 대투쟁 이후 몇 년의 투쟁과정을 거치면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조직된 노동자의 힘으로 자신들의 근로조건을 확대해갔습니다. 그리고 대기업 노동조합이 확보한 근로조건은 다시 중소사업장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이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imf 시기를 거치며 이 선순환은 막을 내린 것 같습니다. 이미 자본은 신경영전략을 통해서 현장을 대기업 공장 내에서도 격차를 두거나,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단협 이후에 중소사업장의 납품단가를 후려치는 과정을 통해 노동자들을 조금씩 조금씩 분리해 나갔고, imf 시기를 통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도 고용이 안정된 일자리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이 시기를 거치며 수많은 사업장에서 같이 일하던 정규직 노동자들이 아웃소싱 등 아름다워 보이지만 결코 아름답지 않은 이름으로 비정규직이 되었고, 정규직 노동자가 일을 하다가 떠난 자리에 비정규직 노동자로 채워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노동조합은 다시 힘을 내서 2002년경부터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정규직 전환 투쟁을 해 왔습니다. 광주 캐리어 노동자들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불법파견 판정과 이에 따른 정규직화를 쟁취해냈고, 이것은 자동차 공장 내 만연해 있던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조직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불법파견 노동자에 대한 정규직화투쟁은 한때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는 주요한 계기점이었고, 많은 노동자를 조직했습니다. 하지만, 투쟁과정에서 전체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향상과 조직화된 힘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의 정규직화에 초점이 맞춰졌고, 결국 정규직으로 전환이 되었지만 노동조의 활동이 강화되는 것에는 큰 힘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단절된 사회구조에서 문재인정부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은 부족하나마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정규직노동자에 의해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전환이 (정규직 노동자들과 같은 형태가 아닌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부정되는 어처구니 없은 상황을 보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한국지엠 창원공장에서 물량감소에 따른 대책으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하던 공정 일부를 정규직으로 대체하는 인소싱으로도 나타납니다.

 

우리는 노동자는 하나라는 구호를 끊임없이 외치고 있습니다.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갈라 놓았지만, 결국 우리는 노동자일 뿐이라고 외칩니다. 우리가 하나라고 외치는 것은 동류의식(同類意識)’을 통해서, 공동의 요구를 하고, 그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서 싸우기 때문이겠지요? 자본이나 국가는 노동자는 하나가 아니, ‘개인별 경쟁시대임을 끊임없이 강조합니다. 엄청난 경쟁을 뚫고 당당히 들어온 자와 부속품처럼 있는 노동자는 하나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어떤 입장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태도가 완연히 다릅니다.

 

함께 일하고 있는 노동자, 그리고 옆에 있는 노동자들과 동류의식을 느끼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