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사회를 보는 눈

금속노조의 힘과 필요성이 확인된 싸움

터사랑1 2018. 4. 23. 12:48

mb가 이재용을 잡다?

이명박전대통령에 대한 각종 비리 및 범죄혐의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 지난 2월 '다스 소송비 대납 의혹'으로 삼성전자 본관에 대한 압수수색이 있었다. 그리고 압수수색 과정에 외장하드 4개를 들고 도망가던(?) 삼성전자 직원을 현행범으로 체포했고, 그 외장하드에서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를 중심으로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 관련 6,000여건의 문건이 들어 있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각종 언론에서 기사화 되고 있다.)

그리고 각종 부당노동행위를 비롯한 불법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박근혜전대통령의 실형 선고에도 피해가던 이재용부회장이 mb로 인해 다시 '구속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뿌린대로 거둔것이리라.




5년을 함께 버텨온 조합원들이 주인공!!

2013년 7월 15일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창립총회를 했고, 전국적인 조직화 사업에 돌입했다. 

금속노조 각 지역지부마다 삼성전자서비스 담당자들이 선임되었고 삼성전자서비스 조합원들과 함께 조직사업을 진행했다. 그렇게 전국단위로 조직화가 진행되었고, 한때 조합원이 1,500여명에 이르기도 했다. 

그러나 삼성전자서비스는 교섭을 경총에 떠 넘기고, 교섭창구단일화 절차의 법적 문제점을 악용하면서 교섭은 속도를내지 못했고, 싸움이 채 시작되기도 전에 최종범 조합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2014년 5월 양산분회 염호석분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투쟁과정에 두 명의 열사가 발생했다. 


그렇게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1년이 지나 단체협약이 체결되었지만, 각 센터별로 '세부확인서' 등을 체결하는 과에서 수개월이 흘러가기도 했다. 


단체협약이 체결되었지만, (건당 수수료라고 하는 이상한) 임금체계의 불명확성으로 노동자들의 임금과 근로조건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그 속에서도 노동조합을 통해 삶을 변화시켜내려는 노력이 이어졌고, 힘든 조건에서도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을 지켜왔다. 하지만 여전히 생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조합원들은 떠나가기 시작했고, 조합원은 700여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경남지역도 한때 200여명에 이르렀던 조합원은 현재 100명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삼성이 실제 사용자'이므로, 직접 교섭에 나올 것'을 요구하는 투쟁을 이어왔다.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노동조합의 깃발'을 부여잡고 함께 싸워온 조합원들이 지금 '삼성에서 노동조합을 인정(사실 헌법에서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기에 '인정'이라는 표현도 필요없지만, '허용'이라는 표현이 나올 지경이니. ㅠㅠ)'하는 상황을 만드는 주인공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싸움을 해 온 수많은 연대단위가 있었기 때문에 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금속노조의 힘과 필요성이 확인된 싸움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투쟁하는 과정에서 그들을 품었고, 그들을 조직했고, 그들과 함께 싸웠던 노동조합, 그것이 전국금속노동조합(위원장 김호규, 이하 금속노조)다.  


- 전국 단위로 조직사업에 집중하는 힘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전국에 흩어져 있고, 조직화초기부터 금속노조 지역별 담당자들이 조직화사업에 함께 했다. 금속노조는 사업장/기업단위 노동조합이 아니라 초기업단위(산업별) 노동조합이기 때문에,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별도의 노동조합 설립절차 없이, 금속노조 가입만으로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었다. 

지역별 담당자들은 격주 또는 거의 매주 금속노조 중앙과 함께 삼성전자서비스 조직화 및 투쟁에 대한 대책을 중심으로 회의를 진행하고, 함께 투쟁을 조직해 왔다. 

지역담당자들이 삼성전자서비스 지회가 초반기 조직이 안정되는 과정에 자본의 탄압과 회유에 맞설 수 있는 논리적 근거와 힘을 제공한 것이다. 


- 재정의 집중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저임금으로 인해 조합비를 많이 거출할 수 없는 조건이었고, 삼성자본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서울집중 투쟁이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재정을 담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 투쟁과정에 재정의 대부분을 금속노조가 담당을 했다. 금속노조는 각각의 기업별 노동조합에서 초기업단위 노동조합으로 조직형태를 변경해서 지금에 이르고 있는데, 초기업단위 노동조합으로 가면서 '재정의 집중, 투쟁하는 노동자에게 재정 지원'을 조직운영 원리로 해 오고 있었다. 


이러한 재정 운영이 가능했기에,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 전체 조합원의 42일 동안의 농성이 가능한 일이었다. 





<진주센터 폐업에 만서 함께 투쟁한 금속노조 조합원들>



<진짜사장 삼성이 나올 것을 요구하며 서초동 본관앞에서 농성을 해 왔던 조합원들.

 비가 내려서 많은 조합원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했고, 경찰과 삼성전자에서 고용한 경비들의 침탈에 대비해서 떠나지 않고 남아있던 조합원들>


<42일 동안의 서초동 농성을 끝내고 치뤄진 염호석열사 장례 일정 중 정동진에서의 노제장면.

 염호석열사의 장례를 치뤘지만, 열사의 시신이 어디있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삼성에서 노동조합을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만큼 언론에서 다양한 취재를 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삼성전자서비스와 같이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 전국으로 흩어져있거나,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런 문제를 풀고자 2001년부터 당시 한국중공업, 만도 등 쟁쟁한 노동조합이 기업별 노동조합의 형태를 초기업단위로 변경해서 금속노조를 만든 것이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가입할 당시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을 포함 15만이었던 조합원은 이제 현대중공업을 포함 17만이 이르고 있다. 


모든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품을 수 있는 그릇이 필요하다. 


그것이 금속노조와 같은 초기업단위 노동조합이 아닐까?

(다른 투쟁에서도 취재를 하게 된다면 이런 부분이 많이 확인되었으면 좋겠다.)